충청도 태생이라-
남정네는 부엌 근처도 얼씬해서는 않된다는 호된 세뇌를 받으며
자란 탓에 오십넘어서까지도 할 수 있는 음식이 없었습니다.
라면- 그것도 끓일 때마다 맛이 달라 원래 그런 것이거니 했습니다.
그런 내가
생애 첫 번째로 시도한 음식이 김치 담그기였습니다.
참치 캔 뜯어 넣고 끓여 본 김치찌개가 아니라 배추김치를 담갔다는 겁니다.
용감했던지 아님 무식한 짓이라는 것은 내가 더 잘 압니다만
아우들이 앞 다퉈 만들어 내던 김치를 보고는
-그 까이꺼 나도 해 보지 싶어 졌습니다.
필리핀이 아니라면 감히 시도할 생각도 하지 못했을 일입니다만-
운전기사 봉을 데리고 시장에 가서 자라다 만 것 같은 배추
6킬로그램을 샀습니다(필리핀 배추는 살이 무르고 작습니다)
같은 집에서 생강 마늘 파 대파와 빨간 피망 깡콩(미나리 대신 사용)도 조금씩 샀습니다.
헬퍼들을 시켜 마늘을 까고 야채를 다듬고-
그리고 배추를 절인 뒤 김치속을 만들었습니다.
김치맛은 양념맛이다는 평소 소견대로 양념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믹서기로 양파 피망을 갈고-
찹살죽을 쑤는 대신 찬밥을 믹서기에 넣고 갈았더니 좋은 죽이 됐습니다.
사과까지 갈아 넣고
마지막 버무리는 단계에서는 나만의 최종병기?인 특수재료를 투입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한국에서 공수해온 5년 묵힌 ‘산야초’입니다.
근디 산야초를 아세요????
이 산야초 역시 내가 담근 겁니다.
봄에 나오는 온갖 것들(민들레 쑥 냉이에서부터 뽕나무잎 찔레줄기등 백화만초)을
갈색설탕에 버무려 5년간 숙성 시켜 얻어 낸 약물을
이번 김치 버무리는데 투입한 겁니다.
옆에서 김치 만드는 것을 지켜보던 헬퍼들에게 김치 한 조각씩을
떼어 입에 넣어 주자 ‘마샤랍 마샤랍’ ‘야미 야미’하면서 난리들입니다.
외사촌 아우가 만들었던 김치맛을 아는 헬퍼도 내것이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듭니다.
생애 첫 작품.
난 아까워서 먹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마눌이 이 사실을 알면 내 ‘꼬추’ 안부부터 물을 것 같습니다.
-남정네는 부엌에 들어가면 꼬추 떨어진다며 하고 말입니다.
아직 내 꼬추도 멀쩡하고
김치맛도 최고니 무든 지청구(충청도 사투리-꾸지람?)도 감당할만 합니다.
-내가 담근 김치맛. 남녀 모두한테 좋은데, 이걸 어떻게 표현한다지^^
지금 입이 근지러워서 죽을 지경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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