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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여행이야기

‘핫 스프링' OK? 질문에 YES 했다가!!

by 고향사람 2011. 6. 10.

예나 지금이나 뜨거운 거 좋아하는 것은 여전하고-. 덕분에 덴 적도 한 두번이 아니랍니다.

성질 뜨거운? 마누라 만나 신혼여행 때부터 잡혀 산 것이 지금까지고, 뒷동산에서 불장난 하다 남의 묘를 태워 죽사발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버릇이 고쳐지지 않아 지금도 누가 뜨거운 곳에 가자고 하면 물 불을 안 가리는 편입니다.

 

필리핀 배낭여행에서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이 나라서 뜨겁기로 유명한 화산지대(마욘 피나투보 따알 마킬링)는 거의 다녀봤고 유명 온천도 자주 가는 편입니다. 순전히 뜨거운게 좋아서입니다. 그런데 이번 바나웨 여행중에 만난 한 호객군은 그런 나를 용케 알아보고 ‘핫 스프링 오케이?’하는 것이 아닙니까. 뜨거운 온천에 가기 원하냐는 소리였습니다. 아직 이곳 여행 일정도 잡지 않았지만 ‘뜨겁다’는 소리만 듣고도 내 입에서는 자동으로 ‘예쓰’ 소리가 나왔습니다.

 

    * 이것도 온천이라고- 이 웅덩이에 몸 한 번 담그는데 왕복 3시간이 걸렸답니다. 알고는 절대 '예쓰'하지

       않았을 겁니다. 아무리 뜨거운 거 좋아하지만 말입니다^^

 

 

    * 다행이 온천 가는 길은 풍광이 수려했습니다. 논둑 밭둑을 걷고 개울을 건너는 고행?이 있었지만

       (다리건너로 보이는게 원두막?이고 그 바로위에 웅덩이 아니 온천이 있답니다)

 

 

임시 가드를 따라 여행안내 사무실에 들러 돈을 지불하고 필리핀 서민교통 수단으로 유명한 트라이 시클(삼발이 오토바이?)을 타고 뜨거운 곳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금방 도착할것 같았던 ‘뜨거운 곳’은 한 시간을 달려도 나타나지 않는 겁니다. 산 넘고 물 건너고 또 산 넘고-. 그동안 수없이 물어 봐도 가이드는 금방 도착한다는 대답뿐이었습니다. 인가도 없는 산길로만 달리는 이 가이드를 보면서 순간 오싹하니 소름이 돋았습니다.

 

-이 녀석이 온천을 가는 게 아니라 나를 인적이 드문 산속으로 데려가 내 가진 것을 다 빼았을 것 같은 강도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닭장만도 못한 오토바이 보조 수레에서 고개 한 번 못 들고 한 시간 넘게 달려 온 곳이 내 무덤이 되나 싶은 게 이제는 스승 세분(예수님 부처님 공자님)께 연신 기도하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내 다시는 뜨거운 거 좋아 하지 않을 테니까 이번만 봐 달라고 말입니다. 그도 그럴것이 내가 간 바나웨도 이 나라서 오지에 속하는데 그 곳에서 한 시간 이상 산속으로 나 홀로 끌려가고 있으니 왜 아니겠습니까.

 

이미 내 머리통과 몸통은 비포장도로를 미친듯이 달리는 트라이시클 충격으로 이리저리 부딪쳐 멍투성이가 됐고, 여행 피로까지 겹쳐 죽을 맛인데 말입니다. 머릿속에서는 별별 생각이 다 나는데 이 때 가이드가 트라이시클에서 내리라는 겁니다. 이제부터는 걸어서 가야 한다며 말입니다.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이제와서 못 가겠다고 뒤로 빼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고, 기도도 많이 했지 싶어 하자는 대로 따라 나섰습니다.

 

동네 하나를 지나더니 숲속을 걷고 다시 논두렁과 밭둑을 지나고 개울을 건너 산골짜기에 들어 섰습니다. 꼭 40분이 걸렸습니다. 트라이시클을 타고 온 시간 1시간20분을 더하면 두시간이 걸린 셈입니다.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친 순간 가이드가 골짜기 한 모퉁이를 가리킵니다. 가만 보니 웅덩이 하나가 파져 있고 거기에 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돌아가신 우리 아버님이 삽질을 해도 한 시간이면 파낼 만큼 작은 웅덩이가 보였습니다. 거기서 뜨거운 물이 나온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빨리 옷 벗고 들어가라고 성화입니다. 옷 갈아 입을 천막하나 없고 해 가림도 없는 물 웅덩이에 들어 가라는 겁니다. 일단 옆으로 다가가 발을 쓱 밀어 넣어 봤습니다. 제법 따슴했습니다. 유황 냄새도 피어올랐습니다. 온천은 확실한데 불쑥 그 안으로 들어 갈 마음은 생기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그 옆 개울에서 물장난 치는 게 훨 나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두 시간 걸려 온 것이 아까워 옷을 훌러덩 벗고 들어갔습니다. 가이드와 나 둘뿐이어서 수영 팬티도 필요 없었습니다.

 

온천물에 몸을 담고 가이드 녀석을 처다보자니 한 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꼴랑 이 웅덩이 온천을 보자고 두 시간을 달려 여기까지 온 거니. 세계 8대 불가사의 어쩌구 하는 라이스 테라스 보러 온 사람에게 말야-. 생각할수록 은근히 부아가 났습니다. 완전히 사기당한 느낌도 들고 말입니다. 저녁 5시 차 표 까지 예매해 놓고 왔는데 이 웅덩이 보러 오느라 왕복 4시간을 소비했으니 말입니다. 다시 오기도 힘든(마닐라에서 13시간 거리) 곳인데 말입니다. 이걸 한국에 데려가 정말 온천이 뭔지 가르쳐 줘야 하나 싶기도 했고 말입니다.

 

아무튼 뜨거운 거 좋아하냐는 소리에 ‘예쓰’ 했다가 큰 낭패만 봤습니다. 서둘러 시내로 돌아가 다시 일정을 잡아 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마눌하고 싸운 날 장모님 오시더라고-. 시간이 없어 죽겠는데 비까지 억수같이 내리는 겁니다. 다른 볼거리 다 접고 이날 저녁 마닐라로 돌아가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라이스 테라스 보러 바나웨에 갔다가 물웅덩이 같은 온천물에 몸 한번 담고 온 게 전부가 됐습니다. 꼴랑 웅덩이 하나 있는 온천에 말입니다. 다시한번 그곳에 가고 싶지만 에어컨도 없는 버스 타고 열서너시간씩 달릴 생각을 하니 언감생심 다시 소리는 나오지도 않습니다.

 

뜨거운 거 좋아하다- 핫 스프링 오케이???에 예쓰 연발하다가 또 크게 데이고 말았습니다. 성질 뜨거운 마누라 한테 이 이야기 꺼냈다가는 또 뜨거운 맛을 볼까봐 ‘그곳 경치가 정말 좋았다’소리만 연발하는 중입니다^^

 

-여행 팁-

바나웨에 도착하면 호객꾼들이 몰려옵니다. 이곳 사정에 익숙치 못하면 이중 한 명을 골라 가이드 겸 트라이시클 기사로 활용하게 됩니다. 이 때 호객군이 식당이나 기념품 가게로 관광객을 안내해 지도를 보면서 가격을 흥정하게 됩니다. 볼 곳이 많으면 가격이 올라가는-. 이 때 온천 운운하면 무조건 노(NO) 하기를 바랍니다. 나 같은 실수를 않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볼 곳은 ‘라이스 테라스’ 뿐입니다. 무조건 그곳으로 가는 과정을 흥정하면 됩니다. 트라이시클이나 지프니 모두 가능하고 요금은 2천 페소 이상입니다. 돌아 올 때는 이고서 판매하는 목 조각품이 가격도 싸고 물건도 좋으니까 몇 개씩 장만하면 좋습니다. 우기철(5월말 11월까지는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비가 내리면 길이 막히기 일쑤니까 말입니다. 마닐라에서 직항 버스도 있습니다. 이 차들은 에어컨이 빵빵하니 긴 소매옷 꼭 챙겨야 낭패를 당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