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쉰 한 살인 우리 집 헬퍼-.
덩치도 나보다 좋고 웃음소리도 나보다 커서
내가 마눌 다음으로 상전처럼 모시고 사는 이랍니다.
나야 1년에 수개월씩만 보면 되는 사이라서
상전으로 모시고 살아도 별반 서운할거 없지만
그래도 가끔은 복장이 터질 때도 있답니다.
오늘만 해도 마눌이 어렵게 사다 놓은 감자 한 자루를
마당에 다 널어놓고 햇볕에 말리고 있는 겁니다.
감자가 햇볕을 받으면 색이 파래지고, 그 파란색 속에는 독이 있는데-
말리지 말라고 해도 들은 척 만 척입니다.
-그래서 이마 벗겨질 만큼 뜨거운 햇볕아래 쪼그려 앉아서 자루에 다 담았습니다.
헬퍼는 선풍기 앞에서 그런 나를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고 말입니다.
우리 집에 가끔 놀러 오는 이가 있습니다.
그 이가 우리 집 헬퍼에게 뭔 짓을 했는지 모르지만
문 앞에만 들어서면 벌써 냉수에 사각얼음 동동 띄워 내 옵니다.
난 몇 년 째 그 얼음 컵을 받아 본 적도 없습니다.
우리 헬퍼가 기르는 고양이는 더 상전입니다.
내가 들어오면 졸린 눈으로 한 번 날 노려보고는 다시 댓자로 누어버립니다.
현관 앞에서 그럽니다.
혹여 꼬리라도 밟게 될까봐 조신하게 피해서 문을 열고 들어 와야 합니다.
내가 생선이 먹고 싶어도 고양이가 생선 먹을 날을 기다려야 하는 것은
이제 당연한 일이 된지 오랩니다.
헬퍼 아들이 일자리가 없다해서 허드렛일이라도 하라고 불러 들였고
우리 기사가 개인사정으로 못 나올 때는 헬퍼 남편을 불러 운전을 시키지만
별로 고마워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헬퍼를 뭣 하러 데리고 있느냐구요.
나 같았으면 벌써 갈라섰습니다.
근디 동병상련이려나요. 마눌과 동갑나기 헬퍼인지라
이런저런 세상이야기가 잘 맞아 떨어지나 봅니다.
웃음도 많고 바지런하고-그럼 됐지 뭘 더 바라냐는 게 마눌 이야깁니다.
나야 상전하나 더 모시면 그만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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