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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난 묘지 이야기

죽음이 삶보다 화려한 곳 레골레타 공동묘지

by 고향사람 2007. 2. 12.

 

#1 삶보다 화려한 죽음

“이 묘원에서 죽음은 삶보다 더 화려합니다.”

레골레타 공동묘지로 안내하면서 교민 H씨는 아르헨티나에서의 삶과 죽음에 대해 말해준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도 가장 땅값 비싸고 고급스러운 동네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이 거대한 묘원은 마치 건축박물관이나 조각공원을 방불케 할 만큼 다양하고 화려한 음택(陰宅)들과 조각상들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저기 음산하고 기분 나쁜 분위기의 검은 고양이들만 아니라면 어느 대부호의 저택에라도 들어선 느낌이었다.

“죽음은 또 다른 삶의 한 형태이고 다만 그 빛깔이 조금 달라지는 것일 뿐이라는 생각인 것이지요.”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묘원의 위치가 워낙 북적대는 시의 한가운데에 있었기 때문이다. 원색의 탱고로 대변되는 삶의 편린과빛깔은 이 화려한 레골레타에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죽음이 삶의 한 연장형태인 한, 사람 사는 동네로부터 멀어질 이유가 없다는 것인데 문제는, 무더운 날씨면 은근히 담을 넘어 풍겨오는 시신 썩는 냄새란다. 그것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몽마르트라는 번화가 한가운데이고 보면 이 악취를 모른 척 넘어간다는 사람들이 대단해 보이기까지 하다. 하긴 악취쯤이야 문제 아닐 것이 레골레타 묘원에는 수많은 관광객의 발길이 연중무휴 이어져 시에 뿌리고 가는 달러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어쨌든 사람들로 늘 북적대다 보니 레골레타의 귀신들은 하루도 조용히 잠들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함께 웃으며 어느 기나긴 헌화행렬에 섞인다.

#2 에비타, 묘원의 여주인

에비타의 묘로 향하는 그 행렬 속에서 H씨는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혹시라도 이곳에서는 함부로 그녀를 폄훼하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아직도 아르헨티나에서는 도처에 페론주의자들과 에비타 숭배자들이 있단다. 무심코라도 에비타를 욕하다가는 멱살 잡히기 십상이라는 것. 살아생전 끝없이 열광과 저주의 한가운데서 성녀와 악녀 사이의 세평을 오르내리던 그녀 에비타. 죽어서도 그 논란은 그칠 기미가 없다. 마침내 다다른 그녀의 묘소. 생전 그녀의 화려함과는 달리 뜻밖에 작고 소탈하다. 이 레골레타의 허다한 부호와 명망가들의 묘를 장식해주는 조각상이나 부조 같은 것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녀의 묘 앞에는 다른 데서 볼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참배객들이 놓고 간 수북한 꽃들이었다. 그 꽃들에 덮여 에비타는 레골레타에 잠든 그 수많은 귀족과 부호들에게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아닐까.

‘잘난 그대들 왜 그대들의 거대한 무덤은 그리도 적막하고 남겨진 꽃 한 송이 없는가.’

기실 레골레타의 이 한 뼘 땅 위에 그녀의 가녀린 육신을 누이게 되기까지는 그 생애만큼이나 많은 파란과 곡절이 있었다 한다. 페론이 실각되고 망명길에 오르면서 그녀의 시신 또한 함께 아르헨티나를 떠나 떠돌았던 것. 죽음 이후도 에비타의 드라마는 계속되었던 셈이다. 페론주의의 부활을 우려한 군부와 민주세력의 반대로 사후 24년 만에야 이 레골레타에 묻히게 되었다. 비록 최고 권력자의 아내였지만 근본 없는 여자라는 싸늘한 시선은 죽음 이후라고 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최고의 가문, 최고의 명망가들만이 묻힌다는 레골레타 묘원의 벽은 그토록 높았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 이 장엄한 묘원 레골레타의 주인은 에비타였다. 손에 손에 꽃을 들고 그녀의 묘소로 향하고 있는 수많은 관광객과 아르헨티나의 노동자, 빈민, 여인들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에비타 혁명은 이 레골레타에서도 계속되고 있었던 셈이다.



 

#3 에비타는 잠들지 않는다

때로 삶은 소설이나 연극이 따라잡지 못한다. 에비타의 경우가 그랬다. 그녀는 아르헨티나의 한 시골마을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15세 때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무작정 상경한다. 미모와 야심의 소유자였던 그녀는 육군대령 후안 페론을 만나고 마침내 영부인의 자리에 오른다. 페론과 함께 노동자의 처우개선, 외국자본의 추방, 여성지위 향상과 임금인상 등을 이뤄내 그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다. 이 민중지지의 기반 위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떨치며 유럽과 미국에까지 사교계의 꽃으로 군림한다. 그녀는 그러나 인생의 정점에서 서른네 해의 삶을 접으며 한 떨기 꽃잎처럼 스러져버린다. 꿈 같은… 진실로 지상의 삶은 그러하다고 지금 에비타의 묘는 말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묘 앞에 수북한 꽃들이 마치 그녀 생전 열광하던 그 민중의 아우성과 손짓들로 보인다.

레골레타. 삶을 사랑하는 만큼 죽음도 가까이 껴안을 수 있어야 한다는 아르헨티나적 삶의 한 방식을 이방인에게 가르쳐준 곳이었다. 그 죽음의 집을 나와 나는 다시 부산한 삶의 저잣거리 속으로 발길을 옮긴다. 아무래도 이곳에서 삶과 죽음은 일직선상에 놓인 것이기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묘지의 하나라는 레골레타(사진 아랫쪽)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고급상가와 주택가가 운집한 중심부에 있고 에비타(사진 윗쪽)의 묘는 그중에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에비타는 학식도 가문도 없던 시골소녀에서 페론 대통령의 영부인이 되었다가 34세에 암으로 사망하는 극적인 삶을 살았다.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마오.’로 유명한 그녀의 전기를 다룬〈에비타〉는 영화로, 연극으로, 뮤지컬로 세계각지에서 공연되는 레퍼토리가 되어 있다.

화가 김병종(조선일보 글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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