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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난 묘지 이야기

필리핀의 별난 묘지이야기(제1편)

by 고향사람 2012. 8. 25.

한국이라면 어땠을까?

필리핀 북쪽 지방인 사가다 루미앙동굴 입구에 방치돼 있는 관(棺) 무더기와 에코벨리 벼랑에 매달려 있는 관(棺)을 보면 이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오르게 됩니다. 조선시대의 유교사상과 조상숭배에 유달리 애착이 강한 우리나라 어른들이 노천에 내 놓은 관과 햇볕은 물론 비바람에 속수무책인 낭떨어지에 관을 내 걸어 놓은 모습을 보면 정말 어떤 생각을 하게될까. 어른들의 경우 당장 ‘경을 칠 놈들’이라며 온갖 육두문자와 함께 노발대발 해 댈거라는 생각이 짙게 듭니다. 그만큼 사가다의 장례풍습은 우리네의 상상을 초월하는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땅바닥에 나 뒹구는 쪼개진 관뚜껑과 빠끔히 보이는 유골-. 더군다나 켜켜이 쌓여진 관들은 주인이 누구인지도 모를 만큼 그 개수를 세기 어렵다. 이러니 유족인들 그 관 주인을 알아 볼 수 있을까. 망자들 앞에 서 있다보면 정말 별별 생각이 다 들게 합니다. 한국인들의 눈으로 보면 패륜아 소리 듣기 꼭 좋을 만큼입니다.

 

 

 

 

유골 찾아 떠난 별난 묘지여행

 

 

 

필리핀 속담중에는 ‘하고 싶은 일에는 방법이보이고 하기 싫은 일에는 변명이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인 ‘평양 감사도 제 하기 싫으면 그만이다’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관심있는 일에는 흥(방법)이 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대강(변명)으로 일관하는게 인지상정인가 봅니다. 사는 나라가 달라도 말입니다.

 

 

필리핀을 자주 다니면서 하고 싶은 일, 정확히 말하면 가고 싶은 곳이 몇 군데 있었습니다. 그 중 한 곳이 별난 장례풍속을 유지하고 있는 사가다(SAGADA)였습니다. 1997년 경 ‘별난묘지 이야기’(미래문화사刊)라는 책을 낸 경험이 발로된 까닭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교통편을 비롯 언어 안내 숙식문제등 산적한 사안들이 너무 많아 선뜻 떠나지 못하고 차일피일해 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에는 방법이 보인다’는 필리핀 속담 처럼 염원을 두었던 일이 이번에 성취됐습니다. 사가다에서 동굴 입구에 쌓아 놓은 관과 벼랑에 매달아 놓은 행잉 코핀(Honging Coffins)까지 둘러 봤으니까 말입니다.

 

 

죽은 자들의 영토는 바로 이곳

 

 

‘북망산천 어드멘가 했더니 문 밖이 저승일세’라고 인생무상을 논했던 우리 선조들의 일성이 필리핀에서 더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게 오히려 아이러니로 다가옵니다. 거개의 피노이(필리핀 사람)들은 무덤을 멀리 두지 않습니다. 동네 한 구석에 공동묘지를 만들어 놓거나 심지어는 마당에 무덤을 조성해 놓은 집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 까닭에 방문만 열어도 ‘문 밖이 저승’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반면 필리핀 북쪽지방에 해당하는 사가다는 통상적인 피노이들의 장례문화와는 사뭇 다른 풍속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도 말입니다. 사가다 지역은 마운틴 프라빈스로 불릴 만큼 산속 오지에 속한 지방입니다. 지역특성상 예로부터 고립된 생활을 유지할 수 밖에 없어 그들만의 고유한 문화와 풍습이 전해 올 수 있었습니다. 물론 최근에는 관광지로 유명세를 더해 이전 것들이 많이 소멸됐지만 장례풍습은 여전히 옛 방식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 비근한 예가 바로 행인 코핀입니다. 필자가 사가다 에코밸리를 방문했을 때(2011년 5월)만 해도 매달아 놓은지 얼마 되지 않은 새 관이 있었으니까 말입니다. 20-30미터에 이르는 벼랑 중간에 선반 처럼 매달아(걸쳐) 놓은 관들은 이곳이 죽은 자의 영토라는 것을 실감케 했습니다. 매장과 화장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는 필리핀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중 일부는 지금도 관을 매달아 놓고 있는데 그 속내를 보면 이 풍습이야 말로 산자들이 죽은 자를 위해 베푸는 체고의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벼랑에 관을 매다는 노역도 보통이 아니거니와 그 절차속에 묻어 있는 산자들의 배려를 생각하면 더 그렇습니다.

 

 

죽음은 곧 육신과 영혼의 분리라고 믿고 있는 이들에게서 죽은 자의 영혼이 이승으로 올라가기 수월한 것은 지하(매장)보다 지상, 더 나아가 공중이 유리하다는 것은 상식으로도 통하는 일입니다. 하늘로 가는 길을 몇 미터라도 줄여 보려는 산자와 죽은 자들의 일심이 망자를 벼랑에 매달게 한 기원이 되는 셈입니다. 관을 벗어난 영혼은 땅을 디딜 필요도 없이 바로 하늘로 갈 수 있으니 그만큼 노고가 줄어 들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산 자들은 먼 저 간 이를 위해 낭떨어지에 구멍을 뚫고 거기에 나무 지지대를 걸어 놓은 뒤 그 의에 관을 안치하는 수고를 감내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이야 기계도 좋고 받줄도 튼튼할뿐더러 지지대로 쇠막대를 사용할 수 있어 작업이 수월해졌지만 예전에는 그 절차가 목숨을 담보로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은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간혹 죽은자를 위한 장례 때문에 산자가 사고로 죽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는 안내자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낭떨어지를 올려다 보는 순간에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비단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생각까지도 말입니다.

 

 

행잉 코핀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관이 매달려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벼랑 중간에 있는 관들은 매달렸다는 표현보다는 걸쳐있다는 말이 더 어울립니다. 왜냐면 관들이 벼랑에 박아 놓은 쇠말뚝 위에 선반 처럼 올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통적인 방식은 낭떨어지 중간까지 관을 묶어 내려 밧줄을 고정 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행잉코핀인 셈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방식은 줄이 낡아지면 관이 땅으로 떨어지고, 공중에 매달린 관은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려 바위에 부딪치면서 관이 쉽게 부서지는 경향이 있어 점점 바위에 구멍을 뚫고 쇠막대를 박아 고정시키는 방식으로 변화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지금의 형식은 거개가 후자를 택하고 있습니다.

 

 

매 주말이나 휴일이면 이곳울 찾는 관광객이 적지 않습니다. 이들이 가장 관심을 갖고 방문하는 곳도 바로 에코벨리와 루미앙동굴입니다. 두 군데 모두 관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이 지역 고유 장례문화가 관광상품으로 발전한 참 특이한 모습이기도 합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참고로 이 글은 후일 책으로 엮을 예정이니 퍼갈 때 꼭 출처를 밝혀 주세요^^ 아울러 사진이 궁금한 분은 '찍힌사진 찍은 사진' 난을 참고 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