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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난 묘지 이야기

사이버 묘지(1부)

by 고향사람 2006. 5. 29.

21세기에 유행할 새로운 무덤

                               - 사이버 묘지 (1 편)




서울 삼청동에 사는 김씨는 전통적인 유가(儒家)의 장손이다. 덕분에 명절 때면 제사를 모시는 게 당연한 일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김씨는 지난 정초 홀가분하게 집을 떠나 용평에 있는 스키장에서 가족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가졌다.

 

설날 아침은 호텔에서 마련한 공동 제삿상에 미리 준비해 간 선조(先祖)님 영정을 내걸고 큰절을 올리는 것으로 새해 첫 차례를 마쳤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좋아하고 아내도 싫지 않은 눈치여서 김씨는 앞으로도 명절 연휴 때마다 여행지에서 제사를 지내며 여가를 즐긴다는 결심을 굳혔다.

 

이 같은 추세는 다만 김씨뿐만이 아니다. 대전에 사는 이씨도 명문대를 졸업했지만 부친 사후 지방(紙榜) 쓰는 방법을 몰라 제사 때마다 모친한테 꾸지람을 들어 오던 중, 어머니마저 돌아 가시자 3년상을 모신 뒤부터는 아예 제사 방식을 나름대로 바꿔(?) 버렸다.

 

즉 양친 생전에 찍어 둔 비디오와 육성 테이프를 제사 때마다 시청한 뒤 자녀들과 함께 준비한 음식을 들며 생전의 할아버지․할머니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대신한 것이다. 조부의 얼굴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영정 앞에서 억지로 절을 시키고, 술을 따르게 하는 것은 요즘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이씨의 주장이다.

 

최근 들어 신세대 가장들을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이 같은 추세는 제사 절차의 번거로움에 대한 의식 전환과 효 사상의 제고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21세기의 새 풍속으로 자리매김할 것이 확실하다.

 

제삿상 대신 비디오와 육성 테이프가 준비되고 더 나아가서는 컴퓨터 제사용품까지 등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동화상(시디롬 타이틀)으로 처리된 컴퓨터 제사용 프로그램은 사용자의 선택 메뉴에 따라 전통․현대식을 따를 수 있을 뿐더러 자신의 취향에 맞는 새 제사 방법을 개발하여 입력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지방을 따로 쓸 필요도 없으며 ‘유세차(維歲次)’로 시작해서 ‘흠향(歆饗)’으로 끝나는 고유문 해석도 리모컨 하나로 작동시킬 수 있다.

 

물론 성균관을 비롯해 일부 보수층에서는 여전히 전통방식을 고집하겠지만, 젊은 층을 설득하기는 역부족해 ‘1가구 2제사 방식’을 도입하는 가정도 늘어날 전망이다. 또 이 같은 양상은 가족 구성원 간의 종교 편향과 신․구세대 간의 의식 편차에 따라 심화될 것이 분명해 자칫 제사 무용론까지 등장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낳게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천주교회가 제사제도를 수용하고, 개신교단이 앞다퉈 현대인에 알맞는 제례 방식(추도식)을 개발해 내놓고 있어 조만간에 신세대의 제사 풍습도 정착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남은 문제가 있다면 소위 구세대(쉰세대?)들이 사후 자신의 기일(忌日)에 받게 될지 모를 충격에 미리 대비하는 연습을 충분히 해놓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홍동백서(紅東白西) 좌포우회(左脯右膾) 하는 형식을 갖춘 제삿상을 받는 것은 포기했다손 치더라도 피자에 햄버거, 크림스프가 올라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더군다나 세계화니 글로벌 시대 운운하며 축문을 영어로 읽어 댄다면야 그 감당을 어찌할까.


위 내용은 필자가 1990년대 중반에 낸 《미리 가본 21세기 종교문화(대흥기획 刊)에 썼던 ‘멀티미디어로 제사 지낸다’는 것을 인용한 것이다.

당시만 해도 조상 제사를 컴퓨터나 비디오를 틀어 놓고 지낸다는 것은 상당히 불경(不敬)스러운 일 중 하나였다. 제사는 바로 정성이 중요하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술 더 떠 조상이나 친한 이들의 묘지도 컴퓨터에 마련하는 세상이 되었다. 일명 사이버 묘지가 바로 그것이다.


새롭게 등장한 사이버 묘지


상전벽해(桑田碧海),지개벽(天地開闢), 기상천외(奇想天外), 황당무계(荒唐無稽)…. 어떤 단어를 갖다 붙여도 기성세대에게는 통하기 힘든 것이 사이버 묘지일 것이다. 그만큼 생소하고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리라. 더군다나 양반집이나 종가(宗家) 사람들에게는 어불성설(語不成說) 그대로일 것이다.

 

하지만 사이버 묘지는 엄연히 존재하고 있을 뿐더러 날로 그 수효가 증가하여 21세기 후반에는 대부분 이 묘지를 선호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내놓는 이들도 적지 않다.

아직 느낌이 잘 오지 않고 있는 사이버 묘지는 의외로 간단하다. 다음은 모 일간지에 실렸던 사이버 묘지에 대한 기사다.


인터넷에 망자(亡者)의 생전 모습과 발자취 등을 담아둘 수 있는 사이버 묘지가 등장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장묘전문업체 (주)효손흥손이 최근 개설한 하늘나라 사이트가 그것. 실제 묘지가 실생활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명절 때 외에는 찾아가기 힘든 반면, 사이버 묘지는 언제든 방문해 고인을 추모할 수 있는 것이 장점. 고인의 사진과 이력은 물론 동영상 자료와 육성까지 담을 수 있어 후손들에게 조상의 발자취를 생생하게 전하는 교육적 효과도 크다.

 

하늘나라는 신청객이 원할 경우 조문록을 마련, 방문자들이 추모사를 기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성별․직업별 검색이 가능하며 국가유공자 등 사회지도층을 위한 별도의 코너를 둬 일반인들도 찾기 쉽게 안내한다. 사이버 묘지는 5가지 기본형 중 하나를 선택하면 5만 원을 받고 제작해 주며 신청자가 별도로 만들어 띄울 수도 있다. 관리비는 연 3만 원이다.

하늘나라는 이 밖에 부음란과 의례 관련 최신 소식을 전하는 하늘나라 저널, 의례 상식과 행정절차, 묘지분양 정보 등을 담은 의례 정보, 하늘나라 야화 사이트도 운용하고 있다. 또 각종 의례 용품을 직거래를 통해 싼값에 구입할 수도 있다.

-한국일보 19991019일자

 

이 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사이버 묘지는 기존 매장이나 화장 풍습을 인정(병행)하면서 가상 공간에 새로운 묘지를 마련하고 가까이서 고인을 추모하는 전혀 새로운 묘지문화를 이끌어 가고 있는 셈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