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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줏돈이 얼마나 무서운데… 절 꾸밀 돈 있으면 남 도와야죠"

by 고향사람 2017. 1. 20.


"시줏돈이 얼마나 무서운데… 절 꾸밀 돈 있으면 남 도와야죠"

      입력 : 2017.01.20

[부산 도원사 만오 스님의 통큰 기부]

부모 유산에 시줏돈·기도비 더해 4년간 국내외로 16억원 쾌척

케냐에 중·고교와 우물 건설, 개신교계 굿네이버스에도 기부
"신도들 정성 전하는 다리일 뿐"

"이게 지하 150m를 파서 만든 솔라펌프예요. 지하수가 엄청 많이 있는데 기름을 쓰지 않아도 태양광으로 물을 잘 끌어올린답니다."

"잘됐네요. 학교든 절이든 물이 기본이죠. 우물 팔 비용을 따로 냈는데, 아주 잘됐습니다."

지구촌공생회 케냐지부장 탄하(왼쪽) 스님이 가져온 학교와 우물 공사 사진을 보며 흐뭇해하는 만오 스님.
지구촌공생회 케냐지부장 탄하(왼쪽) 스님이 가져온 학교와 우물 공사 사진을 보며 흐뭇해하는 만오 스님. 탄하 스님은“꼭 건강 회복하셔서 준공식 때는 케냐를 방문해달라”고 했고 만오 스님은“크든 작든 아프리카에 학교 하나를 더 세우고 싶다”고 했다. /김한수 기자
지난 18일 오후 부산 동아대병원 입원실. 지구촌공생회(이사장 월주 스님) 케냐지부장 탄하(53) 스님은 부산 도원사 주지 만오(79) 스님 앞에 사진 10여 장을 펼쳐놓고 한 장씩 설명하고 있었다. 만오 스님 입가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탄하 스님은 이날 오랜만에 귀국한 길에 기부자인 만오 스님을 뵙고 그동안의 경과를 보고한 것. 케냐 남부 인키토 지역엔 만오 스님이 기부한 2억6000만원으로 중·고교가 건설 중이다. 우물은 학생과 주민들의 식수로 쓰기 위해 먼저 팠다.

올 하반기 완공 예정인 만오중·고등학교는 여학생들에겐 소중한 배움 기회를 제공한다. 탄하 스님은 "이 지역엔 아직 조혼(早婚)과 여성 할례 풍습이 남아 있는데 소녀들이 강제 결혼 후 도망치려 해도 갈 곳이 없다"며 "여학생들을 위한 기숙사를 따로 짓고 있다"고 보고했다. 만오 스님은 "어려운 나라에서 태어난 아이들이지만 훌륭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학교를 잘 지어달라"고 했다.

만오 스님의 자비행은 대륙과 종교, 인종을 넘어 확산하고 있다. 최근 3~4년 사이 그는 개신교계 국제기구인 굿네이버스에 2억원을 기부해 아프리카 탄자니아와 말라위에 산모들을 위한 보건소를 짓고 있다. 산악인 엄홍길씨가 네팔에 짓는 학교에도 내년까지 3억5000만원을 돕는다. 하나같이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먼저 전화 걸어 기부했다. 동국대 경주캠퍼스 관음장학회에도 2억원, 국제선(禪)센터 건립기금 6억원을 기부했다.

그가 주지를 맡고 있는 도원사는 큰 절이 아니다. 부산 사상구 엄궁동 산비탈에 있는 도원사에는 만오 스님과 상좌인 도원(37) 스님 둘만 산다. 1980년대 당시 부유한 편이었던 속가(俗家)의 도움으로 지은 도원사는 대지는 100평 정도로 넓지만 대웅전과 거처(요사채)는 거의 처음 그대로 모습이다. 스님의 말처럼 "대웅전 문지방은 닳았고, 문은 삐걱거리고, 단청은 벗겨진" 상태다. 스님은 "기도하는 데 아무 문제 없다. 절 꾸밀 돈 있으면 어려운 이, 어린이들 도와야지"라고 했다.

만오 스님이 어려운 이들을 돕겠다고 발원(發願)한 것은 도원사 생활 초기였다고 한다. 지금은 아파트촌으로 변했지만 당시 산 아래에는 냉장고 하나 들여놓지 못하는 어려운 이들이 많았다고 했다. 기도하던 중 '내가 전생(前生)에는 좋은 업(業)을 지어 이렇게 걱정없이 살았는데, 금생에는 무슨 선업(善業)을 지었나' 자문(自問)하게 됐다. 주변 동네 가난한 주민들과 학생들부터 챙기기 시작했다. 부모님에게서 받은 유산이 씨앗이 됐고, 신도들의 시주와 기도비가 들어오면 기부 몫부터 떼어놨다. 자신을 위한 지출은 극도로 줄였다. 걸레·행주가 해져도 기워 쓰면서 새 물건, 좋은 음식은 가난한 이웃과 어린이들에게 돌렸다. 지금도 고액 기부를 빼고도 동남아 청소년과 인근 해동고에 지원하는 장학금 등 고정적으로 지출하는 금액이 매달 130만원에 이른다. 곁에 있던 상좌 도원 스님이 "우리 스님은 좋아하시는 두부도 맘껏 못 잡수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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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오 스님의 기부로 지난 4일 완공된‘솔라 펌프’. 태양광 패널이 만든 전기로 시간당 18t의 물을 길어 올릴 수 있다. /지구촌공생회
만오 스님은 "시줏돈 무서워해야 한다"고 했다. "신도들이 얼마나 어렵게 고생해서 모은 정성인데요. 1000원짜리 무게도 천근만근입니다. 성철 스님은 늘 시줏돈 무서워하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신도님들 정성을 어려운 이들에게 전하는 다리 역할밖에 한 것 없어요."

만오 스님은 오래전부터 신장(腎臟)이 약해 1년에 서너 번씩 입원하곤 한다. 지난 17일 오후에도 갑자기 컨디션이 나빠져 응급실을 거쳐 입원했 다. 탄하 스님과 대화 도중 간호사가 와서 "병실이 준비됐다"고 했다. 입원실이 없어 하룻밤은 2인실에서 지냈지만 이제 5인실로 옮긴다는 것이다.

"몸이 아파서 병원비 쓰는 것만 해도 죄송한 일인데 2인실에 쓸 돈 있으면 아이들에게 뭐 하나라도 더 해줘야죠." 만오 스님은 "(안타까운 사연은) 들으면 듣는 대로 다 돕고 싶은데 뜻대로 안 된다"며 아쉬워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19/201701190314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