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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 & 동감

모나미볼펜153, AK47소총, 아이팟, 이태리타월

by 고향사람 2015. 8. 12.

모나미볼펜153, AK47소총, 아이팟, 이태리타월(중앙일보 8월12일 데스크 칼럼입니다)

서로 궁합이 맞지 않는 물건들인데, 공통점이 있다. 모두 대박 상품이다. 살상무기까지 끼워 넣어 뭐하지만 나는 이들을 명품으로 본다. 가격은 명품의 필수조건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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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5월생이니 모나미153의 나이는 만52세다. 지금까지 37억 자루 넘게 팔렸다. 국민볼펜이라 할만하다. 145mm, 일렬로 세우면 지구를 12바퀴 넘게 돈다. 지금도 한 해 2500만 자루 이상이 팔린다. 제품이 정신없이 팔려나가자 광신화학공업사는 67년 모나미화학공업으로 이름을 바꾸고 74년에는 아예 모나미란 이름으로 상장한다. 20141월에는 발매 50돌을 기념해 모나미 153 리미티드 1.0 Black’라는 이름의 한정판 1만 자루를 내놨다. 정가 2만원으로 몸체는 니켈과 크롬으로 도금했다. 판매 당일 이를 사려고 몰려든 네티즌들로 인터넷쇼핑몰은 서버가 마비됐다. 소문이 소문을 부르며 인터넷경매장터에 100만원에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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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47은 소련의 미하일 칼라시니코프가 1947년에 개발한 돌격용 소총이다. 베트남전쟁 때 미군은 화력은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졌다. 가공할 공중폭격을 앞세웠지만 정작 지상의 미군들은 월맹군의 AK소총을 두려워했다. 객관적 성능은 미군의 M16이 뛰어난데도 그랬다. AK는 구조가 간단해 설계도면만 있으면 대장간에서도 뚝딱뚝딱 만들어낸다. 지금까지 1억 자루 넘게 생산했다. 철공소에서 만든 짝퉁까지 하면 이보다 훨씬 많을 거라 추측한다. 세계 살상용 소총 시장의 80%를 차지한다. 중고품이 닭 한 마리 값이란다. 중동이나 아프리카 같은 세계의 분쟁지역 어디에나 이 총이 등장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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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신화의 출발은 아이팟이다. 2001년에 첫선을 보인 아이팟에게 카세트 플레이어 시장의 절대왕자였던 소니의 워크맨은 KO패 당했다. 아이팟은 399달러로 꽤 비쌌으나 날개 돋친 듯 팔렸다. 동그란 휠 하나로 기기를 조작하는 편리성에 소비자들은 열광했다. 2002년 미국산업디자이너협회는 올해의 가장 인상적인 디자인으로 오리지널 아이팟을 뽑고, 애플과 디자인 총책 조너선 아이브에게 디자인 업계 최고의 영예인 IDEA 금상을 줬다. 아이팟은 클래식, 미니, 나노, 셔플, 터치 같은 신제품을 매년 내놓으며 시장을 휘저으며 시대의 아이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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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에게는 공포 어른들에게는 효자, 이태리타월이다. 목욕탕에 빼놓고 가면 낙담하는 이놈의 고향은 부산이다. 1962년 부산 초읍동의 한 직물공장에서 처음 만들었다. 사장은 까칠까칠한 비스코스 레이온 원단을 수입해놓고 쓸데를 찾지 못해 고민했단다. 그러던 중 목욕하다가 원단으로 피부를 문질러 보고는 무릎을 쳤다. 지인들에게 써보라고 나눠준 뒤 반응이 좋자 상품으로 만들었다. 이태리란 이름이 붙게 된 이유는 원단이 이탈리아제였기 때문이다. 터키에 터키탕이 없는 것처럼 정작 이탈리아에는 이태리타월이 없다. 어쨌든 이 덕분에 수건을 말아 때를 밀던 불편이 사라지고 한국의 목욕문화는 묵은 때를 훌렁 벗었다. 손바닥 하나가 겨우 들어가는 천 조각 하나가 생활습관을 바꾸고 새로운 문화를 만든 셈이다.

 

이들을 대박상품으로 만든 비결은 간단하다. 세상을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힘인 심플즉 간결함이다. 모나미153의 부품은 5개다. 디자인도 처음 그대로다. AK소총의 부품은 11개다. 꼬질대가 가늠쇠 밑에 붙어 있어 청소 도구를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다. 물에 빠져도 흙이 묻어도 툭툭 털어내면 방아쇠를 당길 수 있다. 생사가 순간에 달린 전장에서 이는 엄청난 장점이다. 아이팟은 단추 두세 번만 누르면 원하는 노래를 찾고, 이태리타월은 손만 집어넣어 밀면 된다. 그런데 아이팟은 독일의 가전회사 브라운이 만든 포켓용라디오와 놀랄 정도로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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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제품 디자인 대장 조너선 아이브는 말한다.

- 나는 디자인의 영감을 디터 람스에게 받았다.

람스는 브라운의 제품 디자인을 이끈 거장이다. 람스의 라디오는 1954년 제품이고 아이브의 아이팟은 2001년 작품이다. 명품과 명품은 시간을 뛰어넘어 서로 통하는데 심플이 그 다리 역할을 한다. 이는 누구나에게 어디에서나 어떤 상황에서나 적용된다. 학교 리포트를 쓸 때, 논문을 쓸 때, 회사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음식을 만들 때, 이야기를 할 때, 행사를 진행할 때,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나는 매일 신문을 만들며 이 원칙을 뇌고 또 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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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를 하러 아침 일찍 강원도 철원에 갔을 때다. 해발 946미터인 금학산에 오르기 전에 읍내서 요기를 하려고 큰길 가 식당에 들어갔다. 메뉴판을 보며 대체 무엇을 먹어야할지 난감했다. 그리고 며칠 전 전라남도 해남 출장길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벽에 걸린 메뉴판에는 삼계탕과 낙지비빔밥 밖에 없었다. 그나마 낙지비빔밥은 안 된다고 했다. 그래도 멀리서 손님들이 찾아오고 가게엔 빈자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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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함은 돈이고 경쟁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