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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난 묘지 이야기

일본인 아사카와 다쿠미 묘

by 고향사람 2015. 4. 4.

아사카와 다쿠미 84주기 한·일 합동 추모식

연합뉴스 | 입력 2015.04.02 16:34

 

(서울=연합뉴스) 양지웅 기자 = 2일 오후 서울 중랑구 망우리 묘지 아사카와 다쿠미(淺川巧·1891∼1931) 묘역에서 이수현 의인 문화재단설립위원회 주최로 열린 84주기 한·일 합동 추모식에서 참석자들이 고인을 기리고 있다. 아사카와 다쿠미는 1914년 조선으로 건너와 일제 치하 총독부 임업연구소에서 일하며 조선 토양에 맞는 양묘법을 개발하고, 조선인을 이해하려고 한글을 배우는가 하면 월급을 아껴가며 장학금을 주는 등 조선인을 돕다 1931년 망우리 묘지에 묻혔다. 2015.4.2

yangd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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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義人 아사카와 다쿠미

  • 김태익 논설위원

     

  • 입력 : 2015.04.03 03:00

    서울 중랑구 망우리 묘지 동락천 약수터 근처에 203363호 무덤이 있다. 망우리에선 드문 일본인 무덤이지만 한국인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늘 누군가 놓고 간 꽃이 있다. 1931년 4월 2일 무덤 주인이 마흔 나이에 죽었을 때도 추모열이 대단했다. 조문 온 조선인들은 장대같이 쏟아지는 빗속에서 서로 상여를 메려 했다. 청량리에서 이문리 언덕으로 가는 길에선 마을 사람들이 노제(路祭)를 지내고 가라고 장례 행렬을 붙잡았다.

    ▶아사카와 다쿠미(淺川巧). 그는 조선을 사랑하다 유언대로 조선 풍습에 따라 안장돼 조선의 흙이 됐다. 형 노리다카와 함께 조선백자와 공예의 아름다움을 가장 먼저 발견한 일본인이었다. 그러나 그의 조선 미술품 수집은 여느 일본인의 탐욕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사카와 형제는 또 다른 조선미 예찬자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와 손잡고 경복궁에 조선민족미술관을 세우고 애써 모은 미술품 3000여 점을 아낌없이 기증했다.

    
	[만물상] 義人 아사카와 다쿠미
    ▶아사카와 다쿠미는 조선총독부 산림과 직원으로 조선에 왔다. 그런데도 그는 산림 수탈보다는 민둥산을 푸르게 하는 데 앞장섰다. 지금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인공림 상당수는 그의 숨결이 닿은 것이다. 그는 한복에 흰 고무신 차림으로 돌아다니고 조선 그릇에 조선 음식을 담아 먹었다. 많지 않은 월급 절반을 조선 사람에게 나눴고, 적지 않은 조선 학생에게 장학금을 줘 졸업시켰다. 야나기는 "다쿠미만큼 조선 예술을 알고 조선 역사에 통달한 사람이 있겠지만 그처럼 조선인의 마음으로 들어가 그들과 산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라고 했다.

    ▶아사카와 다쿠미의 여든네 번째 기일(忌日)인 어제 망우리에서 예년과 다른 추모 행사가 열렸다. 한국 이수현 의인(義人) 문화재단 설립위원회가 주관한 행사에 다쿠미 고향 일본 야마나시현 주민들이 참석해 한·일 합동 추모식이 됐다. 이번 행사는 이수현재단 설립위원회가 의인의 삶을 발굴해 기리는 사업의 첫 순서였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