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림’ -
터키를 생각하면 이 단어가 생각이 났습니다.
웬지 ‘끌림’이 있는 나라.
그것은 터키라는 국명에서부터 시작이 됐지 싶어 집니다.
터키(turkey)는 조류인 칠면조와 발음과 철자가 같습니다.
또 볼링에서 세 번 연속으로 스트라이크를 했을 때 터키라고 하는 것도
나를 끌리게 했습니다.
칠면조 처럼 변화무쌍하고 연속적으로 스트라이크를 쳤을 때의
그런 상쾌함이 몰려 오는 나라 터키-
이번에 그 세상을 보고 왔습니다.
나를 끌리게 했던 그 무엇들을 통해 이제는 그 나라가 왜 나를 끌어 들였는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형제의 나라-
신비한 나라-
다시 가 보고 싶은 나라가 된 터키-
그 내부를 다시 한번 펼쳐 봅니다.
터키여행 - 그 이야기 서막은
나를 의아하게 했던 ‘형제의 나라’ 운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이 됐습니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대륙, 특히나 외모와 풍습,
생활 방식까지 전혀 다른 이국적인 나라 터키가 우리 한민족과 형제라니-
내심 불쾌하기까지 했습니다.
배(胚)가 달라도 너무 달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터키 사람들을 만날 때 마다 의식적으로 ‘프랜드’라고 불렀습니다.
친구는 될 수 있어도 형제까지는 아니라는 자존감의 발로 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내가 아무리 프랜드라고 해도 답은 여전히 ‘브라더’였습니다.
-이런 제길. 난 너 같은 형제 둔적 없거든.
그래도 궁금한 건 여전했습니다.
왜 이들은 우리를 일컬어 형제라고 부를까.
한국 전쟁 때 지원군을 보내 혈맹을 맺은 까닭인가.
그거야 미국이나 영국에서 더 많은 군인을 참전시켰으니 형제라면
그들이 더 큰 형이지 왜 유독 터키만 형제 운운할까 싶었던 것입니다.
답은 오랜 전 역사에서 찾았습니다.
지금은 지정학적 이유로 많은 혼혈이 이뤄져 그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지만
오래 전 터키인은 중앙아시아 남부에 기원을 둔 훈족에서 시작되며
우리와 같은 우랄알타이족이라는 사실에서 말입니다.
우리는 까맣게 잊고 살았지만 터키인들은 결코 잊지 않았던 겁니다.
그래서 한국 전쟁 때도 지원군 1만명 모집 공고에 수많은 젊은이가 나서
결국 예정보다 훨씬 많은 1만5천명의 군인을 파견하게 됐고,
6.25 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곳 중 하나인 군우리전투를 거치면서
7백명이 넘는 전사자를 내기도 했습니다.
이후 국내(일본과 공동 개최)서 열린 2002년 월드컵에서의 3-4위 결정전과
한국인들의 헌신적인 응원이 기폭제가 돼 터키인들의 지독한 한국 사랑이
‘브라더’ 소리를 자연스럽게 내게 하는 요인이 돼 버린 것 같습니다.
브라더-
그 반가운 말에 무뚝뚝하게 프랜드 하며 손을 내밀었던 내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터키인들의 순수를 가식으로 받아 들였던 세속적인 내 양심이
지금도 얼굴을 붉히게 합니다.
우리와 같이 엉덩이에 몽골 반점이 나타나는 터키민족-
분명 형제의 나라가 맞는데 말입니다^^
(2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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