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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이야기

우리 사무실에 경찰이 온 이유-

by 고향사람 2012. 9. 25.

오늘 아침 경찰관이 우리 사무실에 왔습니다.

인상도 험한 피노이 경찰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경찰이 사무실을 찾아 온 것은 사내 비리직원을

일벌백계(一罰百戒)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우리 사무실에는 현장 & 사내 직원이 40여명 정도 됩니다.

임시 고용인까지 합하면 그 수는 50여명이 넘습니다.

이러다보니 별별 형태의 직원이 다 있게 됩니다.

 

한 두 시간짜리 심부름을 시키면 저녁 때가 돼서야 들어오는 노옴.

애가 꼬뿔에 걸렸다며 결근하는 노옴.

전날 밤 과음했다며 결근하는 노옴.

물건 사러 갔다가 돈 잃어 버렸다며 빈 손으로 들어오는 노옴.

고장난 중장비 고치라면 엉뚱한 곳 뜯어 놓고 있는 노옴.

정말 별별 노옴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우리 사무실 구매 담당 직원이 소위 ‘삥땅’을 많이 한다는 소문이 돌아

구매처를 상대로 조사를 해 봤더니 정말 적잖은 금액을 속여 온 게

드러났습니다.

일테면 10만원짜리 물건을 10만 7천원짜리 가짜 영수증을 가져와

돈을 타가는 그런 형태였습니다. 7천원은 자기 주머니로 집어넣은 겁니다.

 

증거를 들이대며 ‘너 이게 사실이냐’고 따져 물었더니

펄쩍 뛰면서 증거가 있으면 대라는 겁니다.

그래서 경찰을 불렀는데도 물 오른 독사 대가리마냥 절대로 자기는

이중 영수증 처리를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할 수 없어 경리 아가씨와 경찰을 동행해 구매처를 찾아가 영수증을 대조케 했습니다.

 

그러고 나자 이 직원이 얼굴색이 변하더니 잘못했다고 합니다.

더불어 ‘기회를 한 번만 달라’며 사정합니다.

그동안 여러 해 같이 일했고 더불어 그나마 성실한 피노이라고 생각 해 왔던

직원의 배신이라서 우리는 실망이 더 컸습니다.

운전 기사이기도 했던 이 직원은 차량 사고도 여러번 냈지만

그 때 마다 회사 돈으로 다 배상해 주고 생일 때면 가족들을 불러

잔치?도 해 줄 만큼 아끼던 직원이었습니다.

그런 직원이 배은망덕한 행위를 일삼고 있었으니-

거기다가 자기 잘못을 뉘우치기는 커녕 적반하장(賊反荷杖) 격으로 나와

경찰을 부른 겁니다.

 

결론요-. 결국 이 직원한테 사표 받는 것으로 일단락 지었습니다.

해고 시키려 했지만 그래도 뭔 정이 남아 있는지 다른 직원들 한테

체면이라도 차리게 할 양으로 스스로 사표를 내는 것으로

모양새를 만들어 보냈습니다.

 

살다보면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싸울 수도 있습니다만

지혜로운 자는 그 잘못을 인정하고 얼른 제자리로 돌아오는 자입니다.

우리 직원은 기회가 있었지만 그 기회마져 날려버려 실업자가 되고 만 셈입니다.

생일 때 불러냈던 그 가족들 눈망울이 떠 올라 오늘은 종일 마음이 우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