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집은 딸이 둘이여. 근디 큰 애는 쌀쌀맞고 둘째는 맴이 고와.
-파란 대문집있쟈. 그 집 안식구 남편이 한국사람이래.
-2층집 할멈은 나만 보면 같이 산책하자구 난리여.
이른 아침 어머님을 모시고 동네 한 바퀴를 돌다 보면
발걸음보다 훨씬 빠르게 이집 저집 사정을 소상이 알려 주십니다.
정원을 장식한 선인장이 ‘산세베리아’고
텃밭에 심어진게 까무떼(고구마)라는 것도 어머니를 통해 알게 됐습니다.
-엄니. 엄니는 여기 오신지도 얼마 안 되는디. 워떡게 이런걸 다 안대유.
궁금해 여쭤보면 어머니 대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낸들 아냐. 내도 모릉께 물어 본 거지.
-영어도 필리핀 말도 모르시면서 어떻게 물어 본대유.
-아. 척하면 삼천리지. 꼭 영어를 알아야 사남. 그럼 애초부터 말 못하는
이로 태어난 이는 어떻게 산다냐. 다 궁하면 통하는겨.
대수롭지 않다는 어머니 말이 이해가 가지 않지만
동네 사정 다 꿰고 계신 어머니가 신통방통합니다.
아우와 내가 출근하고 나면 어머니 혼자 집에 계신데
나이 어린 헬퍼와도 얼마나 잘 통하는지 전혀 불편해 하시지 않습니다.
설거지하는 헬퍼를 향해
-조이야 그만허고 밥 먹어.
이 말과 함께 수저를 입에 가져가는 흉내를 내면 헬퍼 조이가 금세 대답합니다.
-‘땡큐 맘’ 하고 말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산책길에 주택가에서 울고 있는 무슬림 여자를 보자
급히 다가가시더니 어디 아프냐고 묻습니다.
어머니 손은 벌써 배와 이마를 가리키며 말입니다.
뭔지 모르게 섧게 울던 무슬림 여자가 눈물을 닦으며 멀뚱하게 처다 보다
어머니 손짓을 보더니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젓습니다.
어머니 뭐하러 남의 일에 간섭해유. 그냥 모른체 하시지-
그러자 엄니는 어디 아픈거 같아서 그랬다며 머리가 아프면 집에 있는
쌍화탕을, 배가 아프다면 활명수 한 병 갖다 주려고 그랬다는 겁니다.
내년이면 팔순 잔치상을 받아야 되는 어머니신데-
아직도 챙겨야 할 사람들이 많습니다. 피노이들까지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울 어머니 이 동네 반장으로 나서면 딱 일 것 같습니다.
이번 일요일엔 관리사무실을 찾아 상의 좀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새 ‘반장’ 좀 추천하겠노라고 말입니다^^
'살아가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헬퍼가 아프대요 (0) | 2012.03.28 |
---|---|
일 복 많은 울 아우- (0) | 2012.03.26 |
어머님께 꽃신을 사 드리며- (0) | 2012.03.16 |
내가 아침마다 음식물 쓰레기를 챙기는 이유- (0) | 2012.03.14 |
‘설사’ 5일째- (0) | 2012.03.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