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오지에 갔다가
길에서 한 여아를 만났습니다.
신발도 신지 않고 머리는 산발한 원주민 아이였습니다.
모처럼 가족들과 함께 시골 장터라도 다녀 오는지
각자의 짐들이 그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여아 발밑에도 흰자루 하나가 보였습니다.
마침 주머니에 사탕 봉지가 있어 하나씩 꺼내 주며 물었습니다.
몇 살이냐고 말입니다.
아이가 대답대신 배시시 웃습니다.
내 말을 못 알아 들었나 싶어 재차 물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동네 사람이 대신 대답합니다.
정확한 나이를 모른 다는 겁니다.
노인도 아니고-
무슨 영문인가 싶어 하는 나를 위해 설명을 해 줍니다.
출생증명서가 없어 대충 어림잡아 나이를 정한다며 말입니다.
어른이 돼 갈수록 자기 나이를 정확히 아는 이들이 없답니다.
기실 나이가 필요 없기는 동네 사람 모두가 마찬가지입니다.
다닐 학교도 없고
군대에 갈 일도 없고-
그저 태어난 순서만 기억해 위 아래를 정하면 그 뿐입니다.
단순한 이들의 삶속에 끼어든 우리가 이상한 셈입니다.
왔다가면 그만인 세상
굳이 나이를 따지고 재산을 따지면 무얼하나 싶어집니다.
즐겁게 살다가면 그만 인 것을-
그러고 보니 어쩜 이들의 삶이 진정한 인생이 아닌가 싶어졌습니다.
이전투구 할 이유도 없고-
이참에 호미 하나들고 인적 드문 산골로 들어 가
나물 먹고 물 마시며 살아 보면 어떨까-
하지만 나로 하여금 그곳까지 오염이 되지 않을까 싶어
그냥 웃다 왔습니다.
그네들을 만난 기억만 가지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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