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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이야기

피노이 노부부의 '졸리비' 데이트

by 고향사람 2011. 7. 17.

살다보면 조그만 일들로부터도 감동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오늘 점심때 내가 그 경험을 했습니다.

민다나오 일리간에서 볼일을 보고 까가얀데오로로 오는 도중에

점심 때가 돼서 햄버거 가게인 졸리비에 들렀습니다.

(졸리비는 한국의 롯데리아와 같은 자국적의 패스트 푸드점입니다)

 

입구에 주차를 시키는데 항상 그렀듯이 어린아이들이 달려듭니다.

그 와중에 남매로 보이는 대여살짜리가 주차장 경계석에 앉아 감자칩을 먹고 있었습니다.

손님중에 누가 그들에게 건넨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그런데 남은 음식을 얻어먹으면서도 남매는 서로의 입에 감자칩을 넣어 주기에 바빴습니다.

꼬제재한 손으로 서로에게 먹여 주는 모습이 참 살가워 보였습니다.

 

나갈 때 아이스크림이라도 하나씩 사줘야겠다는 마음으로 햄버거를 먹고 있는데,

이번에는 노부부가 매장 안으로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70대 후반쯤 돼 보이는 할아버지와 좀 적어 보이는 할머니였습니다.

패스트푸드점에서는 쉽게 만나 보기 힘든 노인들이었습니다.

 

노부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나서 난 한 번도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매장에 들어 설 때부터 할아버지 손은 할머니 허리에 걸쳐 있었고

음식을 시킬 때도 메뉴판 그림을 보면서 일일이 소개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할머니가 연신 고개를 끄덕이다가 한 쪽을 가리켰습니다.

 

할아버지가 주문을 마치고 나서 할머니를 테이블로 안내하는데-

의자를 빼주고 이미 깨끗이 닦여진 탁자를 티슈를 꺼내 다시 한 번 닦아 주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것도 할머니쪽만 말입니다.

시킨 음식을 보니 피노이들이 좋아하는 닭고기였습니다.

콜라와 파이 두 조각도 보였습니다.

 

그동안 화장실서 손을 닦고 나온 할아버지는 어느새 고깃점을 발라 할머니 수저위에 놓아 줍니다.

언뜻 보이는 할아버지 표정이 그렇게 행복해 보일수가 없었습니다.

그려 저렇게 곱게 늙어야지-. 부부가 백년해로한들 저런 정이 없다면 의미가 없지-.

오늘은 햄버거 하나 먹다가 마음속으로는 더 많은 행복을 맛보았습니다.

 

오늘 밤에는 마눌한테 전화 좀 해야겠습니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통화도 못하고 살았는데

믿저야 본전이지 싶은 맘으로 이 말도 해 볼 참입니다.

-당신. 내가 사랑하는 거 알지.

 

마눌한테 벌써 노망났느냐는 소리 좀 들으면 어떻습니까.

오늘 본 노부부의 사랑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