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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 & 동감

필리핀은 왜 가난한 나라가 됐나 - 1

by 고향사람 2019. 3. 11.

아시아의 부국(富國)은 왜 가난해졌나


이재은 기자 입력 2019.03.11.       

[이재은의 그 나라, 필리핀 그리고 빈국 ①] 70년대까지 아시아 경제 이끌던 선도국가.. 80년대 아시아 첫 여성대통령 배출하는 등 앞서나가

[편집자주] 세계화 시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각 나라에 대해 궁금했던 점이나 국제뉴스를 보고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 등을 국제정치와 각 나라의 역사, 문화 등을 통해 재미있게 풀어나갑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1970년대의 필리핀 마닐라 아베니다 /사진=위키커먼스


어릴 적 차를 타고 서울 중구에 위치한 장충체육관 근처를 지날 때 마다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저기 밖에 봐봐, 저 체육관은 과거 우리나라가 잘 못살았을 때 필리핀이 만들어준거야. 당시 우리나라에 이걸 만들 정도의 기술력이 없었대. 돈도 없었고. 그랬던 우리나라가 이만큼 발전했으니 대단하지?"

훗날 어른이 돼서야 알게됐지만, 어머니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장충체육관은 건축가 故김정수의 설계로 서울시의 예산과 국고보조금 등으로 만들어젔으니 말이다. 한마디로 가난한 한국을 불쌍히 여긴 필리핀이 체육관을 무상으로 지어줬다거나, 한국인 엔지니어가 아닌 필리핀인 엔지니어가 설계했다는 등의 이야기는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일종의 유언비어였다.

하지만 이 유언비어는 꽤나 강력해서, 많은 국민은 아직까지 이를 사실로 믿고 있다. 인터넷은 물론이고 책 등에서도 "1963년 개장한 장충체육관은 필리핀이 지어준 것이다" 등의 문구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럼 이 같은 말을 큰 근거가 없는데도 수많은 국민이 그대로 믿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그럴만해서'다. 필리핀은 과거 아시아 대부분의 국가들이 선망했던 아시아의 대표 국가로, 수십년 전까지만해도 '꽤나 잘 살고' '정치적으로도 선진적인' 아시아 국가로 자리했었다.


2017년 8월 필리핀 마카티시의 풍경. 앞부분엔 슬럼가가 위치하고, 뒤켠엔 개발, 발전해가는 마카티시가 보인다. /AFPBBNews=뉴스1


필리핀은 독립이후 1970년대까지 아시아의 경제를 이끄는 경제 선도국가이자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의 창설한 주도한 국가였다. 필리핀에는 금, 구리, 니켈, 크롬, 알루미늄 등 풍부한 광물이 있다. 연중 온화한 기후와 비옥한 토지를 가져 쌀, 옥수수, 바나나, 설탕, 사탕수수, 카사바 등 농작물 생산도 풍부하다. 이런 필리핀은 1946년 미국에서 독립한 뒤 1950년대 미국의 경제 원조를 바탕으로 특히 제조업 분야에서 성장을 이룩했다.


이후 마르코스가 집권한 첫 시기(1965년~)에도 적극적으로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고 제조업 분야에 민간자본의 투자를 촉진하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상당기간 성장했다.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1966년 기준 필리핀의 GDP(국내총생산)은 63억7100만 달러였다. 당시 한국의 GDP는 39억2800만 달러에 불과했다. 필리핀의 GDP는 동남아 다른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도 높은 것이었다. 1966년 태국의 GDP는 52억7000만 달러, 말레이시아 GDP는 31억4400만 달러였다. 필리핀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였고, 동아시아에서는 일본 다음으로 잘 사는 나라였다.


자연히 필리핀은 아시아 국가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아시아의 부국으로 자리한 필리핀에는 각종 국제기구도 자리했다. 필리핀 마닐라에 위치한 아시아개발은행(ADB) 본점 역시 이 당시 아시아의 대표국 필리핀에 생긴 국제기구 중 하나다. 1963년 유엔아시아유럽경제위원회(UNECC)가 주최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각료회의에서 ADB 설치가 통과된 뒤 1966년 12월19일, 마닐라가 ADB 유치지로 최종 낙점됐다.


뿐만 아니다. 필리핀은 정치적으로도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한발짝 앞서 나가는 이미지였다. 필리핀에는 '태평양의 아이젠하워'라 불리는 막사이사이가 있었다. 막사이사이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게릴라를 이끌고 일본과 싸웠으며 2차 대전 종전 후에는 국방 장관을 거쳐 1953년 제7대 대통령이자 필리핀 공화국 제3대 대통령에 당선된 인물이다. 공산주의자들의 후크발라합 반란을 성공적으로 진압하고 내란을 수습하면서 전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막사이사이 전 필리핀 대통령 /사진=위키커먼스


대통령 임기 중 막사이사이는 그의 청렴성으로 또 한번 존경을 받았다. 그는 가족 및 측근에게 어떠한 혜택도 부여하지 않았다. 자신의 우상화를 경계해 도로, 다리, 및 건물 등이 자신의 이름을 따서 호명되는 걸 허용하지 않았다. 또한 대통령 의전 특권을 반납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국민에겐 가히 파격적인 지도자였다.


그가 1957년 세부 섬에서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 추락사고로 순국하자 전세계적 추모 물결이 일었다. 1958년 록펠러 재단이 막사이사이 재단을 설립, 막사이사이상을 제정했을 정도다. 막사이사이상은 자유를 위한 막사이사이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아시아 발전에 이바지하는 사람에게 주는 상이다. 참고로 한국인 중 장준하, 김활란, 법륜스님, 윤혜란, 박원순 등도 이 상을 수상했다.


이후 필리핀은 독재자 마르코스의 독재 정치 시기를 거치며 암흑기에 빠져든다. 마르코스는 1965년 국민당 공천으로 제10대 대통령에 당선된 뒤 21년간 장기집권했다.

물론 마르코스 역시 집권 초기에는 농공업 정책을 시행하고, 토지 개혁 등을 시도하는 등 개혁 의지를 피력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정권 유지를 위해 본인을 비롯 친인척과 수구 엘리트 세력의 재산 수호에 급급하는 등 전형적인 독재자가 된다. 1972년 9월 계엄령을 선포하여 정당활동을 금지하고 정적과 언론인을 투옥하기도 했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필리핀에 대한 아시아 국가들의 존경심과 부러움은 급격히 낮아졌다.


마르코스가 1983년 베니그노 아키노 상원의원을 암살하고 국민의 신임을 잃어 반마르코스 열풍이 불었는데, 이때 대다수 필리핀 국민의 지지를 받아 베니그노 아키노 의원의 부인 '코라손 아키노'가 대통령으로 당선됐을 때 필리핀은 마지막 기회를 얻었다. 민중의 힘으로 정권을 재창출했고, 민주정권을 이룩했기 때문이다.


1986년 코라손 아키노가 미국 타임지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다. /사진=타임지          


1986년 2월25일, 독재정권과 부패한 관리, 무능한 정부 등에 대항해 민중이 궐기하고 이로써 마르코스 대통령이 물러난 사건을 '피플파워'(People Power·민중의 힘) 혁명이라고 부른다. 당시 한국을 비롯 주변 국가들은 제대로된 민주주의를 이룩하지 못했던 때였기에 필리핀 국민이 창출해낸 정권과 배출한 대통령은 아시아 국가의 부러움을 받았다. 더군다나 코라손 아키노는 아시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었기에 그 의미가 더욱 컸다.


자, 이처럼 필리핀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아시아를 선도하는 국가 이미지였고 1970년대까지 마닐라는 해외 다른 유명 도시에 밀리지 않는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었다. 1980년대엔 민주주의 측면에서 앞서가는 정치문화적 리더의 면모도 보였다.


지금은 어떠한가. 필리핀은 이제 세계 최빈국 중 하나로 불린다. 필리핀 통계청의 2009년 자료에 의하면, 5인 기준 가구당 월 소득이 134달러 이하인 빈곤층이 전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필리핀 도시 곳곳은 마약과 마피아로 가득해 위험하고, 우리나라 사람이 필리핀을 함부로 여행할 경우 여권법에 따라 형사처벌을 받는다. 필리핀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이들은 해외에 나가서 일하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가사도우미로 나가 세계 곳곳에서 일한다. 필리핀은 이제 '가정부의 나라'라는 별명을 얻었다.


분명 필리핀은 진보하거나 제자리에 머물러 있기 보다는 오히려 퇴보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문제들이 필리핀을 이런 모습으로 만들었을까.


지난해 5월12일 필리핀 마닐라의 한 슬럼가가 플라스틱 쓰레기로 뒤덮여있다. /AFPBBNews=뉴스1


과연 필리핀의 현재 모습은 정말 마르코스 시기의 잘못된 정책들에서 비롯된 것일까. 다음 편에서는 필리핀의 현재 모습을 짚어보고 어디서부터 필리핀이 꼬였는지 하나씩 살펴본다.

☞[이재은의 그 나라, 필리핀 그리고 빈국 ②] 계속

이재은 기자 jennylee11@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