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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이야기

썽깔있는!!! 우리 집 헬퍼

by 고향사람 2012. 3. 5.

올해 스므살이 된 우리 집 헬퍼-

이름이 ‘조이’입니다.

 

짝달막한 키에 뭉툭한 코가 영낙없는 오리지널 피노이상입니다.

하지만 웃을 때 마다 보조개가 쏘-옥 들어가고

일손 빠르고 어른 공경할 줄 알아 지낼수록 정감이 넘쳐 납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한 성깔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걸 혼내 줄까 말까 하는 중입니다.

 

한국에 계시는 엄니가 겨울만 되면 필리핀으로 피한을 오십니다.

한국이 너무 춥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아우와 일하는 민다나오에서만 계시는데 나이 어린 헬퍼가

엄니께 깍듯이 잘하는 게 고마워 쇼핑 때 이것저것 사주곤 합니다.

며칠 전에도 엄니 신발을 사면서 헬퍼 티셔츠와 핸드폰 고리를 사줬습니다.

그리고 같이 외식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헬퍼에게 엄니를 부탁했습니다.

 

엄니 모시고 주차장까지 가려면 한 참을 걸어야해서

쇼핑몰 출구에서 기다리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주차장서 차를 빼와 출구로 나왔는데도 보이지를 않는 겁니다.

좀 기다리면 나오겠지 해도 함흥차사가 돼 버렸습니다.

 

전화를 했더니 엉뚱한 곳에서 헤매이고 있었습니다.

팔순 노모를 모시고 말입니다. 뭔가 잘못됐다 싶어 급히 안으로 들어 갔는데

헬퍼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바람에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까가얀데오로에서는 가장 큰 쇼핑몰이라는 에스엠이지만

출구가 동서남북 네 군데에 불과한 이곳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는 헬퍼를 생각하니 부아가 났습니다.

 

그 참에 전화벨이 울리더니 팔순노모 목소리가 들립니다.

얘가 이리저리 돌아 만 다니지 길을 못 찾는 다는 겁니다.

삼십여분 가까이 헤매다가 겨우 만나게 되자 정말 화가 낫습니다.

너 뭐하는 녀석이냐고 큰 소리를 쳤더니 미안하다는 소리만 연발합니다.

거동도 불편한 엄니는 잔뜩 지쳐있고 말입니다.

 

평생 촌에서만 살아 온 녀석이라 대형 쇼핑몰이 익숙치 않은 것은 알지만

벌서 여러차레 다녀간 곳에서 길을 잃다니-

이거 바보아냐 하고 나무라다 보니 한편으론 안쓰럽기도 했습니다.

제 딴에 얼마나 당황했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섭니다.

그래서 웃으며 괜찮다고 말하다 농담처럼 한마디 했습니다.

바보처럼 굴었으니 내가 사준 티셔츠 토해?내라고 말입니다.

웃자고 한 소리였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에 보니 내 방 앞 의자에 쇼핑백이 놓여 있었습니다.

살펴보니 헬퍼 티셔츠였습니다. 어제 내가 사준 게 거기 있었던 겁니다.

무슨 일인가 싶었다가 가만 생각해보니 어젯밤 내가 한 말이 떠 올랐습니다.

그 소리를 고깝게 듣곤 내 방 앞에다 제 셔츠를 놓고 간 겁니다.

순간 또 화가 났습니다. 이걸 짤라 말아-

 

너무 비싸 못 사겠다는 것을 괜찮다며 사준 물건이라 제 딴에도

욕심이 나는 옷일 텐데도 그걸 내 방 앞에다 놓고 간 겁니다.

정말 한 성깔하는 셈입니다.

 

이틀째 그 자리에 있는 셔츠-

마음 같아서는 쓰레기통에라도 버리고 싶지만 어른인 내가 참아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은 퇴근 후에도 티 셔츠가 그 자리에 있으면 헬퍼를 불러서  손에 쥐어 줄 참입니다.

이 옷은 네게 참 잘 어울리는 옷이라고 말하면서 말입니다.

녀석도 분명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을게 뻔하니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