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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이야기

부모님을 놀래키려 했다더니-

by 고향사람 2012. 2. 21.

필리핀 우리 옆집에는 마음착한 피노이 부부가 살고 있습니다.

남편은 대학교 교수이자 목사이기도 한 인텔리집안입니다.

자녀들이 성장해 외지에 나가 살자 그 자리를 고학생들로 채워

봉사하고 있을 정도로 마음 씀씀이가 큰 부부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집에 큰 우환이 있었습니다.

객지에 살던 아들이 집으로 오던 중 불귀의 객이 돼 버린 것입니다.

올해 서른 한 살 된 장정 아들인데 말입니다.

 

사연인즉 이랬습니다.

타향에서 살던 아들이 자기 생일을 앞두고 부모님께 연락도 없이

집을 찾은 것입니다. 그것도 수백킬로 미터 떨어진 자기 직장에서부터

오토바이를 타고 1박2일을 달려 왔다는 겁니다.

부모님을 놀래킬양으로 연락도 하지 않고 말입니다.

 

집으로 오기 전 시내서 고향 친구부터 만나게 된 이 아들은

유흥가를 찾아 밤새 술 마시고 노래 부르며 놀다 여관에서 잠이 들었는데

다른 이와는 달리 아침에 깨어나지를 않더라는 겁니다.

살펴보니 이미 숨이 멈춘 상태였습니다.

사인은 과로에 과음이 겹쳐 심장이 멈춘 것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병원 의사가 그렇게 말했다는 겁니다.

 

새벽에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우리 옆집 노부부.

그 마음이 어땠을까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예정에 없이 나타나 부모님을 놀래케 하려는 깜짝 쑈를 준비했던 이 아들은

얼굴도 보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 함으로써 정말 부모를 놀래키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평생 잊지 못할 아픔으로 말입니다.

 

장례를 치르며 초취해 가는 그 부부를 지켜보며

한국인들이 자주 쓰는 ‘자식이 아니라 원수’라는 상말 속담이 떠올랐습니다.

부모를 놀래 키려고 작정했으면 바로 집에 들어왔어야지-

죽어 눈도 뜨지 못하는 모습으로 부모 앞에 나타나면 그 무슨 소용일까.

순간의 방심이 평생 씻지 못할 불효를 하고 만 생면부지의

옆집 총각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픕니다.

그 부모 때문입니다.

 

내가 살아야 하는 또 다른 이유-

그건 옆에 계신 노모께 불효를 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도

포함이 된다는 사실을 또 한 번 깨달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