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이야기

‘그려 잘했다 잘했어’

고향사람 2015. 3. 22. 08:13

 

아내가 머무는 필리핀 집에는 운전사 겸 집사 역할을 하는 라라키(남)와

집안 청소와 식당 일을 하고 있는 바바애(여)들이 몇 있습니다.

다들 오랫동안 함께 한 사이라서 아- 하면 어- 할 정도로

눈치 코치가 이미 9단을 넘어 선지 오래된 이들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아쉬운 점, 아니 고쳐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무슨 일이든지 능동적이고 적극적이지 못하다는 겁니다.

지난 번 일만 해도 그렇습니다.

 

배달 받아 먹는 음용수에 문제가 있었는지

헬퍼와 기사들 모두가 배탈이 났다고 야단법석이었습니다.

나름 진단도 내놨는데 물에 이상이 있다는 겁니다.

평소에 비해 냄새도 나고 맛도 다르다며 말입니다.

 

그럼 당연히 배달소에 연락을 해서 물을 바꿔 달라고 해야 하는데-

문제만 발견하고는 누구하나 나서 해결하려는 노-옴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새 물을 사게 돈을 달라고 하니

 

-느그덜 미쳤냐. 문제가 된 물을 바꿔 와야지 그건 그대로 놔두고

새 물을 사오겠다고.

 

집사람 대신 내가 큰소리를 치자 그때서야 기사가 물통을 싣고 나갑니다.

그리곤 한 참 뒤 돌아와서 자랑스럽게 하는 말.

-서얼(sir) 물 바꿔왔습니다. 근데 한통은 일부 사용해서 안 바꿔 줬고

또 한 통은 뚜껑을 따서 안된다고 해서 나머지 세 통만 새 것으로 바꿔 왔습니다.

 

-이런 붕신^^. 그 물을 마시고 배탈이 났었으면 배상이라도 해 내라고 큰 소리쳐야지. 뭐 뚜껑 딴 거라서 바꿔 오지도 못했다고.

 

정말 내 머리 뚜껑이 열리는 것 같았습니다.

더군다나 자기네들 정수기가 고장나 일부 물이 제대로 걸러지지 않아 그랬다고 했다는데. 그걸 아무 컴플레인 없이 가게 주인이 하는 대로 하고 온 겁니다.

 

그러면서 무슨 큰 일이라도 해 낸듯 배실배실 거리며

자랑스럽게 물통을 바꿔왔다고 보고하니-

내 입에서는 ‘그려 잘혔다 잘혔어. 장하다 장혀’ 소리만 연발 나옵니다.

 

마눌 혼자 이런 인간들하고 살려니 '얼마나 속이 터질까' 싶어집니다.

조만간 다시 들어가 마눌 대신 내가 피박을 써줘야 할 것 같습니다.

마눌 이마에 주름살 더 늘기 전에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