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이야기

선(善)에 대한 보답이 꼭 선이랴만-

고향사람 2014. 9. 13. 08:38

선(善)과 악(惡)은

공존할수 없는 양극(兩極)이라는게 평소 지론입니다.

반면 선행에 대한 보답은 인과응보가 적용될것 이라는 확신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살다보면 꼭 그런 대입(代入)만 기대할수 없는 게 현실인것 같습니다.

 

얼마 전

필리핀서 중장비 사업을 하는 아우가 잠시 한국에 들렀습니다.

새로운 장비를 구매하기 위해서입니다.

고향집에 들른 아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마침 내 차 엔진룸에서 잡소리가 나길래 아우한테 말했더니

바로 확인을 해 줍니다.

 

그러더니 에어컨과 발전기를 연결하는 벨트가 끊어 진 것을 발견하고는

바로 카센터로 가 수리를 받게 했습니다.

상황 파악을 못하고 운전을 계속했으면 도로 위에서 차가 멈춰 설수 있었던 셈입니다.

그러면서 아우가 생각났다는 듯이 한 참을 웃은 뒤 지난 추석 때

필리핀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해 줍니다.

자기도 도로 위에서 차가 멈춰서 낭패를 당했다며 말입니다.

 

-추석이 다가오니 필리핀 사람보다는 한국 사람이 더 생각 나데유.

마침 어렵게 지내는 한국 노인 한 분이 생각나 쌀 한포대하고 용돈 좀 챙겨

산골짝에 있는 그 분에게 드리고 돌아 서는데, 가만 보니 그 분이 신고 있는

슬리퍼가 얼마나 낡았는지 금세 끈이 떨어 질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신고 있던 슬리퍼를 벗어 주고 그 헌 것을 신고 오려고 했더니

그나마 그 분한테는 그것도 더 신을 수 있지 싶어 그냥 맨발로 차에 탓지뭐유.

 

 

근데 말이유. 시내 사거리까지 들어 왔는데 그 한가운데서 차가 멈춰 서는 거 있쥬.

시동이 꺼졌는데 도무지 재 시동이 안되는 거유. 뒷 차는 뺑뺑거리지. 비는 내리지.

보다 못했는지 주변에 있던 피노이들이 차를 밀어 줘 거우 갓길로 차를 빼 놓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차에서 내리는 다들 나를 쳐다보는 거유.

털털 거리는 중고차에서 내린 사람은 외국인이고- 거기다 신발도 못 신은 채

시커먼 맨발로 더러운 물리 넘쳐나는 길위에 서 있으니 거지만도 못해 보였을거구만유.

 

순간 보니 피노이들의 눈에는 실망감이 넘쳐 나더라는 겁니다.

혹여 차를 밀어 줬으니 음료수 값이나 나올 까 기대 했다가

허름한 차에 더 허름한 외국인이 신발도 없이 차 안에서 나오니 뭔 기대를 할 수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아우의 끝맺음 이야기는 내 가슴에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내 딴엔 그래도 선행을 하고 오는 길인데 하필 이날 차가 시내 사거리서 고장 날 것은 뭐고, 슬리퍼 까지 벗어 줘 맨발인 나를 길 위에 내려 서게까지 한다면 이건

너무 하지 않은가. 어디엔가라도 이렇게 항의하고도 싶었지만 평소에 더 자주 선행을 하다보면 이런 최악의 상황은 확률이 훨씬 낮아 지겠지 라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피노이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고 먹을 것, 입을 것 잘 나눠주던-

필리핀서 함께 일하며 지켜 보았던 아우의 성품을 잘 아는 지라

이날 우스개 소리 하나 보태 줬습니다.

 

-그렁께 차 안에 스페어 타이어만 싣고 다니지 말고 스페어 신발도 준비해 다니랑께^^

 

선행에 대한 보답으로 선(善)만 생각하는 것도 욕심일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