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편지

아들아-

고향사람 2013. 6. 16. 08:48

 

- 아들과 함께 필리핀 퀘존에 있는 양로원(graces)을 방문했습니다.

  

 

다음 주 목요일

아들이 입대를 합니다.

친구들은 이미 예비군훈련을 받고 있는데-

아들놈은 이제야 논산훈련소에 갑니다.

 

부모가 필리핀서 살고 있는 터라

훈련소까지 바래다주지도 못합니다.

그러자 아들이 인사차 이곳으로 왔습니다.

 

딱 1주일의 여정

혹여 뭔 일이 생길까봐

여행도 못하고

함께 집안 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구석구석을 뒤질 때 마다 쏟아져 나오는 낯익은 물건들

이중에는 아들이 대형교통사고를 저질렀을 때

쓰던 것들도 나옵니다.

 

갈비뼈 절반이 부러지거나 금이 갔고

턱뼈도 깨졌고

창자에 구멍이 뚫리는-

 

여기에다 부러진 갈비뼈가 폐에 구멍을 낸

정말 초대형 사고 였었습니다.

열악한 필리핀 의료시설을 보면서

치료가 힘들 거라 했던 그런 녀석이었습니다.

 

불과 3년 전 일이었는데

이랬던 녀석이 사고 전 보다 더 건강해져

군대에 간다고 인사하러 왔으니-

정말 감회가 무량합니다.

 

첫 신검 때 현역 2급 판정을 받았다가

재검에서 공익으로 떨어진 탓에

해병대 꿈은 접어야 했지만

어린 조카들 앞에서는 군대서 제일 높은 게

‘공익’이라며 너스레를 떨어 댑니다.

 

마눌과 나 역시 아들 생각과 다르지 않습니다.

공공의 이익을 선도하기 위해 다시 생명을 얻은

아들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2년-

정말 공익을 위해 열심히 근무하다가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길 기도합니다.

 

내일 아침 비행기로 떠나는 아들을 배웅하다보면

아내는 또 눈물을 많이 흘릴겁니다

-저게 어떤 놈인데 하면서 말입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들에게

-너 군대가면 부대 옆에 방 하나 얻어 목소리라도 듣고 살겠다던

마눌의 약속은 늠름하게 성장한 아들의 모습에 묻혀 버린지 오랩니다.

 

-이번 기회에 당신도 한국나가 살지

아들 그림자라도 밝고 다녀야 허잖어

내 놀림에도 별 반응이 없는 걸 보면 마눌 각오도 아들 못잖은듯 싶습니다.

 

어려서 말을 빨리 배워

남들보다 ‘아빠’ 소리를 먼저 듣게하고

초딩때부터 반장 회장 임명장을 들고와

아빠보다 지놈이 높다며 으스대던 녀석이지만

여전히 내게는 품안의 자식입니다.

 

-그려 훈련 잘 받고 건강하게 복무혀라.

내일 아침 떠나는 녀석에게 뭔 말을 해야 할지

벌써부터 나도 코끝이 찡해지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아부지 저 공익이에요 공익. 군대서 제일 높은-

눈치 챈 아들의 너스레에 그만 웃고 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