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서 좀 살았다 싶지 하려면-
얼마 전 한국 대학생들이 민다나오에 와서
의료 교육 환경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봉사활동을 하다가 돌아 갔습니다.
이중에는 여학생들도 있었는데-
이 나라의 열악한 환경에 적응하느라 고생이 심했던 것 같았습니다.
먹고 자고 하는 기본 문제에서부터
듣도 보도 못한 여러 종류의 해충에 시달렸던 것 까지-
이 중 한 여학생은 장소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바퀴벌레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는 고백도 합니다.
한 남학생은 집 식구들과 함께 살아가는 개미떼에 놀라고
강물을 퍼 와 식수로 사용하는 모습에 전염병을 걱정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런 저런 소감을 듣다보니 웃음이 났습니다.
속으로는 이런 생각까지 하면서 말입니다.
-그려 여기서 이삼년만 살아봐라. 바퀴벌레가 장수하늘소 처럼 귀엽게 보이고
빵조각에 붙어 있는 개미 털어 내기가 귀찮아 그냥 입에 넣게 되니까.
뭐 살아 있는 단백질 섭취랄까.
그러면서도 나 역시 처음에 와서 얼마나 놀랐었는지-
하는 생각에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24시간 시도 때도 없이 울어 대는 닭소리
-인민군 총소리보다 더 크게 들리는 도마뱀 울음소리
-음식에 떼로 달라 붙어 있는 개미
-1년 열두달 끊이 없이 달려드는 모기
-동네 어귀마다 윗도리 벗어 던지고 똥배 내민 채 돌아다니는 아저씨들
-사거리마다 자리 차지하고 멈춰선 차 유리창을 두드리며 구걸하는 꼬맹이들
정말 어느 것 하나 낯설지 않은 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이런 풍경을 접하다 보니 이제는 나 역시
반바지에 조리신고 다니는 것은 물론 개미가 먹다 남긴? 빵도 잘 먹게 되고
바퀴벌레가 이불속에서 나와도 그러려니 합니다.
그러고 보면 나도 이젠 필리핀서 좀 살았지- 싶어지는
군번이 됐나 봅니다.
그게 좋은 건지는 더 지내봐야 알겠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