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무언의 충고가 된 용돈 3만원

고향사람 2011. 10. 6. 13:29

모처럼 한국에 나갔다 필리핀으로 돌아오던 날.

팔순을 넘어 90세 가까운 백모(큰어머니)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아침 일찍 고향 집엘 찾아 오셨습니다.

 

백모 숙모 울 엄니까지 삼동서가 한 마을에 사는 까닭에

집들이 멀리 떨어져 있지 않지만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인지라

지척도 천리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먼 길 떠나는 조카를 한 번 더 보겠다며 수고를 마다치 않은 겁니다.

평소에도 살갑지 않은 태도를 내 자신이 더 잘 아는 터라

엄니한테는 물론 백모 숙모께도 잘해드리지 못하고 살았는데-

그런 조카에게 밥 한 끼 못해 줬다며 여로에 밥 사먹으라고

손수 용돈을 가지고 찾아 온 것입니다.

 

몇 번을 거절해도 돈이 적어서 그러냐며 역정을 내시는 탓에

더 이상 마다치 못하고 감사히 받았습니다.

내가 용돈을 드려도 부족할 판에 쌈지 돈을 받고 보니 염치가 없었습니다.

객지에서 건강하게 지내라는 덕담까지 받은 덕으로

필리핀에 무사히 들어와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큰 어머님이 준 3만원은 감히 허트루 쓰기가 겁나

지금까지 지갑속에 잘 보관하고 있습니다.

한 때는 열심히 돈을 벌기도 했고 그 돈을 저축하며 살기도 했었지만

이에 비해 사랑과 인정은 제대로 간수하지 못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 나에게 무언의 충고가 됐던 게 바로 큰어머님이 주신 3만원입니다.

덕분에 요즘은 매일 지갑속 3만원을 꺼내 세면서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있습니다.

돈을 모으는 것보다 사랑을 모으고 베푸는 삶을 살자고 말입니다.

 

사랑은-

사랑은-

감동을 주는 것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