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제수씬 좋겠수-10살 어린 남편과 살게돼서

고향사람 2010. 10. 31. 16:00

필리핀서 함께 사는 아우가 오늘 오후 머리를 깎았습니다.

한국을 자주 오가는 아우인지라 웬만해선 필리핀서 머리깎는 모습을 보지 못했는데,

이번엔 웬일인지 피노이 이발사를 집으로 불러들여 머리를 깎는 것이었습니다.

 

언뜻봐도 머리가 길다 싶었길래 그러려니 하고 방에 있다 나가보니

밖에서 큰 소리가 났습니다. 머리를 다 깎았나보다 했더니

연신 웃음소리까지 딸려 나와 나가 보았습니다.

그러자 제일먼저 말쑥하게 머리를 깎은 아우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제수씨가 배꼽을 쥐고 웃는 겁니다.

아우는 머쓱한 모습으로 뒷머리만 긁적거리고 말입니다.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어 아우 뒤로 가 보자 영낙 없는 해병대 머리였습니다.

정수리까지 바짝 쳐 올린 것은 물론 앞머리도 짧게 짤라 놔

금방 군대서 휴가 받아 온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습니다.

 

‘형- 나 내일 입대 헐꺼여’

이 말이 아니어도 벌써 내 입에서도 웃음이 새어 나왔습니다.

충청도 말로 ‘잘쿠생’(잘됐다는 속어)소리가 나온 것도 그동안 아우가

유난히 머리깎는데 신경을 써 온 까닭입니다.

 

필리핀 미용실은 거개가 게이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어느 곳을 가 봐도 게이 이발사 미용사가 넘쳐난다는 말입니다.

유독 게이를 싫어하는 동생인지라 미용실 근처는 가지도 않아

한국에 나갈 때 까지 장발을 유지하곤 했는데-.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 아마추어 이발사까지 집으로 불러 들였는지-.

근데 하필이면 이발사가 아우 머리를 그렇게 깎아 놔 버렸으니 zzz

하기사 마당 한 구석에서 거울도 없이 머리를 깎았으니 올려 치는지

내려치는지 알 수도 없고, 설마하는 마음으로 빨리 끝내기를 바랬는데-.

집안으로 들어와 거울을 보는 순간 그만 자신도 모르게 웃음보를 터뜨린 것입니다.

이 소리에 제수씨까지 나와 웃음을 보탰고 말입니다.

 

나 역시 아우 머리를 보곤 그냥 말 수 없었습니다. 아우를 놀릴 수는 없고-.

그래서 제수씨한테 말했습니다.

‘제수씬 참 좋겠수. 10년은 젊어진 남편하고 살게돼서-’

 

나도 이참에 머리 바짝 깎고 젊어진 모습으로 마눌한테 가 봐???

하긴 그래봤자 지청구(꾸지람)나 먹지 싶어집니다.

언제 철들거냐고 심드렁하게 대꾸할테니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