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4천 페소 - 좋은 일에 쓰랍니다

고향사람 2010. 2. 20. 15:49

지난해 12월 15일 필리핀에 들어오셔서

두 달 넘게 머무르고 계신 울 엄니가 며칠 전 4천 페소를 내밀며

좋은 일에 써 달라는 겁니다.

-그것도 필리핀 사람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필리핀 이곳저곳을 다니시면서 이 나라 사람들 사는 모습을 지켜보셨던 엄니.

빈민촌을 볼 때마다 혀를 차면서 안타까워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런 엄니와 이 얘기 저 얘기 중에 민다나오 촌사람들의 열악한 주거환경을 거론하면서

돌 뿌리가 드러난 맨 바닥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아주 작은 교회를 보고

바닥 콘크리트 하는 비용을 내가 대 주었다고 하자 울 엄니,

그 말을 귀담아 들으셨나 봅니다.

내가 민다나오로 떠나기 전날 그동안 모아 놓았던 용돈을 다 내 놓으신 겁니다.


-당신도 좋은 일에 그 돈을 쓰겠다면서 말입니다.


엉겁결에 주는 돈을 받아 민다나오로 왔습니다만

4천 페소로 누굴 어떻게 도와 줘야 엄니한테 잘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

요즘 은근히 걱정이 됩니다.


가난하고 식구 많은 집에 젖 짜는 염소를 한 마리 사줄까

아님 그 돈에 내 돈을 더 보태어 송아지 한 마리 사줄까

아니면 무너져 내리는 집을 수리해 줄까

초등학생 학비를 내 줄까.


많지도 않은 돈 4천 페소 때문에 요즘은 생각하는 게 많아 졌습니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10만원 정도 하는데-

그 정도 돈으로는 우리 식구 외식 한 번 하면 그만인데-

-엄니가 좋은 일에 쓰라고 하면서 준 돈이라 이래저래 궁리만 많아집니다.


내 일하는 현장에서는 하루에 1-2 백만원 쓰는 것도 보통인데

겨우 4천 페소 쓸 곳을 찾지 못해 지금 고민중이니

-정말 이 돈 어떻게 쓰면 좋을까요^^